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의거를 일으킨 날이에요. 이맘때면 안중근 명언을 찾는 분이 많아지는데, 인터넷에 도는 문장 가운데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섞여 있어요. 🖌️ 이 글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여순) 감옥에서 직접 붓으로 쓴 유묵(遺墨)의 한자 원문·음·뜻을 국가유산청 자료로 확인해 정리하고, 보물로 지정된 31점 전체와 진위 논란이 있는 글까지 차근차근 짚어 볼게요.
안중근 의사는 누구? 날짜로 보는 생애
1879년 황해도 해주 출생, 교육과 의병의 길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어요. 천주교 세례를 받았고, 1906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청년 교육에 힘썼어요.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1905년 상하이에서 만난 프랑스 신부에게서 ‘첫째는 교육을 발달시키는 것’이라는 당부를 듣고 교육 운동에 나섰다고 해요. 1907년 이후에는 국외로 건너가 의병 활동을 이어 갔어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와 1910년 3월 26일 순국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체포됐고, 뤼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았어요.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았고, 같은 해 3월 26일 순국했어요.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 날짜 | 일 | 비고 |
|---|---|---|
| 1879년 |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 천주교 세례명 토마스(도마) |
| 1909년 10월 26일 | 하얼빈역 의거 | 현장에서 체포 |
| 1910년 2월 14일 | 사형 선고 | 이후 항소하지 않음 |
| 1910년 2~3월 | 옥중 유묵 휘호, 『동양평화론』 집필 | 유묵에 ‘경술(1910) 2·3월 뤼순 옥중’ 표기 |
| 1910년 3월 26일 | 뤼순 감옥에서 순국 | 유해 미발굴 |
안중근 명언 대표 유묵 5가지 (한자 원문·음·풀이)
안중근 명언으로 알려진 글 대부분은 감옥에서 일본인 검찰관·간수 등에게 써 준 붓글씨예요. 『논어』·『사기』 구절 같은 교훈이 많아요. 자주 인용되는 다섯 점을 골랐어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보물 제569-2호로, 안중근 명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글귀예요. 『논어』 구절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논어』 본문에는 없는 문장이에요. 배움의 가치를 말한 다른 명언은 배움 명언 모음에서 더 볼 수 있어요.
見利思義見危授命 (견리사의견위수명)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 보물 제569-6호예요. 『논어』 헌문편에서 공자가 ‘완성된 사람(成人)’의 조건으로 든 말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 안중근 의사가 처음 만든 문장은 아니에요. 원래 맥락이 궁금하다면 논어 속 공자 명언과 함께 읽어 보세요.
爲國獻身軍人本分 (위국헌신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보물 제569-23호예요.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순국 직전, 재판정을 오갈 때 경호를 맡았던 일본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 준 글이에요. 지바의 유족이 보관하다가 1980년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어요. 옆에는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라고 적었어요.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보물 제569-10호예요. 『논어』 자한편 구절에서 왔고, 어려운 때가 와야 사람의 지조가 드러난다는 뜻이에요. 사자성어로는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고 해요. 짧은 한자 글귀는 한자 사자성어 명언 글귀에도 정리돼 있어요.
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2022년 보물 제569-29호로 지정됐어요. 1910년 3월 뤼순 감옥 간수 책임자에게 써 준 것으로, 『명심보감』 구절에서 유래했어요. 교육가 안중근의 생각이 드러나요.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유묵 31점 한눈에 보기
‘대한국인 안중근’과 손바닥 도장
국가유산청 공공데이터 기준으로 안중근 의사 유묵은 보물 제569-1호부터 제569-31호까지 31점이에요(2026년 10월 확인). 진짜 유묵은 대부분 글씨 옆에 ‘경술 2(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적고, 왼손에 먹을 묻혀 찍은 손바닥 도장(장인, 掌印)이 있어요. 단지(斷指) 동맹 때 자른 약지 마디가 짧게 찍힌 게 특징이에요.
참고로 2026년 8월 국가유산청이 일본에서 환수해 공개한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국제법은 대포만 못하다)’ 유묵은 아직 보물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아요.
| 보물 번호 | 한자 원문 | 음 |
|---|---|---|
| 569-1 | 百忍堂中有泰和 | 백인당중유태화 |
| 569-2 |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
| 569-3 |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 연년세세화상사세세연년인부동 |
| 569-4 |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 |
| 569-5 | 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 |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부개진가련 |
| 569-6 | 見利思義見危授命 | 견리사의견위수명 |
| 569-7 | 庸工難用連抱奇材 | 용공난용연포기재 |
| 569-8 | 人無遠慮難成大業 | 인무원려난성대업 |
| 569-9 | 五老峰爲筆三湘作硯池靑天一丈紙寫我腹中詩 | 오노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 |
| 569-10 |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
| 569-11 | 思君千里望眼欲穿以表寸誠幸勿負情 | 사군천리망안욕천이표촌성행물부정 |
| 569-12 | 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
| 569-13 | 博學於文約之以禮 | 박학어문약지이례 |
| 569-14 | 第一江山 | 제일강산 |
| 569-15 | 靑草塘 | 청초당 |
| 569-16 | 孤莫孤於自恃 | 고막고어자시 |
| 569-17 | 仁智堂 | 인지당 |
| 569-18 | 忍耐 | 인내 |
| 569-19 | 極樂 | 극락 |
| 569-20 | 雲齋 | 운재 |
| 569-21 | 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 |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
| 569-22 | 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안위노심초사 |
| 569-23 | 爲國獻身軍人本分 | 위국헌신군인본분 |
| 569-24 | 天與不受反受其殃耳 | 천여불수반수기앙이 |
| 569-25 |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
| 569-26 | 臨敵先進爲將義務 | 임적선진위장의무 |
| 569-27 | 人無遠慮必有近憂 | 인무원려필유근우 |
| 569-28 | 日通淸話公 | 일통청화공 |
| 569-29 | 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 |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 |
| 569-30 | 志士仁人殺身成仁 | 지사인인살신성인 |
| 569-31 | 洗心臺 | 세심대 |
표 가운데 ‘人無遠慮難成大業’은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國家安危勞心焦思’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애태운다’는 뜻이에요. ‘志士仁人殺身成仁’·‘博學於文約之以禮’도 『논어』에서 온 구절이라, 고전의 지혜가 궁금하다면 고사성어 명언 글귀 모음도 함께 보세요.

『동양평화론』과 마지막 유언
『동양평화론』은 왜 미완성일까?
『동양평화론』은 사형 선고 뒤인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글이에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서(序)·전감(前鑑)·현상·복선·문답 5장으로 구상했지만, 서와 전감 두 장만 쓰고 순국해 미완성으로 남았어요. 집필 시간을 얻으려 항소를 포기했지만, 형 집행을 늦춰 주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요.
동생들에게 남긴 유언으로 전해지는 말
순국 직전 면회 온 두 동생 정근·공근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다오’라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져요. 날짜는 자료마다 달라요.
안중근 명언으로 잘못 알려진 글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진위 논란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로 알려진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방송·책에 자주 나오지만, 원본이 확인되지 않아 진위 논란이 있어요. 도진순 교수는 2023년 『역사비평』 논문에서 지금 널리 퍼진 편지 문장은 1994년 일본과 한국에서 나온 책 두 권을 통해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봤어요. 어머니가 아들에게 항소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도 전해졌지만, 지금 도는 편지 문장을 그대로 어머니가 쓴 글로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출처 없이 도는 문장 구별법
‘안중근 명언’이라며 현대 말투로 된 긴 문장이 돌기도 하는데, 유묵·자서전(『안응칠 역사』)·공판 기록 같은 원전이 제시되지 않았다면 조심하는 게 좋아요. 또 ‘견리사의 견위수명’처럼 『논어』 구절을 옮겨 쓴 유묵도 많으니,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와 ‘안중근 의사가 지은 말’은 나눠서 이해하면 정확해요.
안중근 명언은 거창한 구호보다 ‘책을 읽고, 의로움을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라’는 생활의 가르침에 가까워요. 10월 26일 하얼빈 의거일에 한 구절씩 손글씨로 따라 써 보는 것도 좋겠죠. 마음을 다잡는 다른 말이 필요하다면 인생 명언 모음도 둘러보세요. 🇰🇷
참고 자료
국가유산포털 「안중근의사 유묵 –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보물)
국가유산포털 「안중근의사 유묵 – 위국헌신군인본분」(보물)
안중근의사기념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양평화론」
도진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와 「전언」, 조작과 실체」, 『역사비평』 142호(2023)